<ESG-우리의 일상속으로> 생물다양성소개 - 숲은 그늘을 내고 비를 머물게 한다

 ESG. 지속가능한 우리 생활은 특별한 구호나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우리의 생활이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ESG를 실천하는 단체와 기업. 그리고 사람들의 일상을 소개합니다. 그들의 노력과 일상이 이해되고 전파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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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숲이 먹이고 기르는 숲이었다면, 7월의 숲은 그늘을 내고 비를 천천히 받아 주는 숲이다. 무더위와 빗속에서도 생명들이 머물 수 있도록, 숲은 조용히 속도를 낮추고 자리를 내어 준다.

 

희경: ‘잎’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참 많은 것 같아요. 3월이 되면 ‘새싹’이 올라온다고 하고, 4월에는 갓 펼친 잎을 ‘새잎’이라고 부르죠. 5월이면 ‘어린잎’이라는 말이 어울리고요. 애벌레들이 그 어린잎을 열심히 먹는 모습도 관찰하게 되잖아요. 6월엔 숲을 초록 물결로 채우는 ‘푸른잎’, 7월엔 숲의 지붕이 되어 주는 ‘그늘잎’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듯해요. 더워진 날씨 속에서 나뭇잎이 만들어 준 그늘 안으로 들어가면, 언제 더웠냐는 듯 공기가 달라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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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희경


재희: 맞아요. 나무 아래 그늘 속으로 들어가면 더위를 피해 쉴 수 있죠. 그런데 사람만 나무 그늘에서 쉬는 건 아니에요. 곤충과 새, 작은 생명들도 나무 그늘 아래에서 더위를 피하고 숨을 고르죠.

저는 이 시기를 그늘의 시간, 곧 ‘나무의 시간’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3월에는 새잎을 틔우느라 분주했고, 5월에는 애벌레와 새끼 새들에게 먹이를 내어주는 식탁이 되어 주었잖아요.

 그런데 7월이 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져요. 나무는 강한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광합성을 하고, 그 에너지로 줄기를 더 단단하게 키워요. 그리고 내년 봄 새잎을 틔울 겨울눈도 준비하기 시작하죠. 우리가 보기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나무는 지금 가장 열심히 자신의 내일을 준비하고 있는 셈이에요.

 그래서인지 여름이 깊어질수록 잎도 조금씩 달라져요. 손수건 물들이기 활동을 해보면, 6월까지는 잎의 색이 선명하게 배어나오는데, 7월 이후에는 같은 잎이라도 색이 쉽게 나오지 않더라고요. 잎이 더 두껍고 단단해지는 시간이라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희경: 아, 그래서 7월쯤 손수건 물들이기를 하면 잘 안 되었군요.

 7월이 되니 무더워지고 비도 자주 오기 시작하네요. 요즘 비는 소나기처럼 갑자기 확 쏟아질 때가 많아서, 밖에서 조사하다가 비를 맞게 될 때도 있어요. 그러면 저도 모르게 나무 밑으로 쏙 들어가죠.

 나무 아래에 서 있으면 빗소리가 더 크게 들려요. 가만히 잠시 들어 보면, 빗소리가 하나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죠. 잎에 닿은 빗방울, 가지를 타고 흐르는 빗방울, 나뭇잎 끝에 모였다가 톡 떨어지는 빗방울이 모두 다른 소리를 내요. 바위에 떨어진 빗방울은 팍 퍼졌다가 천천히 바위를 타고 내려가고요.

 빗방울은 무엇을 만나느냐에 따라 속도도 방향도 달라지죠. 잎에 머물고, 가지를 따라 흐르고, 줄기를 타고 내려오면서 한 박자씩 늦어져요. 수피에 스며들어 사라지기도 하고, 잎끝에 맺혀 잠시 멈춘 듯하다가 방울방울 만나 함께 떨어지기도 하네요.숲은 비를 부드럽게 해 주는 것 같아요. 그 덕분에 흙은 빗물을 조금 더 천천히 받아들일 수 있고, 뿌리는 스며든 물을 다시 생명으로 끌어올릴 기회를 얻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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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희경


도시에 떨어진 빗방울들은 나무를 만나지 못해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흙을 만나지 못해 스며들지 못한 채 빠르게 흘러가 버리는 것 같아요. 어딘가 물길이 막히면 물이 고이고, 비가 와도 땅에 오래 머물지 못하겠지요.

 비가 지나간 숲에 다시 서 보면, 촉촉한 흙과 젖은 낙엽, 잎 뒤에 숨어 있는 작은 생명들이 눈에 들어와요.

그 생명들에게 숲의 습도는 어떤 영향을 줄까요?

 

재희: 비의 속도와 양을 조절해 주는 숲의 음악을 들으셨군요.

 저는 비가 내리면 가장 먼저 나뭇잎이 숲의 비 손님을 맞이한다고 생각해요. 나뭇잎과 가지를 타고 빗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리면서 비의 무게를 덜어 주고, 그 덕분에 아래에서 살아가는 작은 생명들은 거센 빗줄기 대신 한결 부드러운 비를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그 소리가 숲이 생명들을 다정하게 보듬어 주는 소리처럼 들려요.

 “숲의 습도는 숲 생물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이끼였어요. 이끼는 물을 머금었다가 천천히 내어주면서 숲의 촉촉함을 오래 붙잡아 두는 존재 같아요. 저에게 이끼는 마른 공기 속에서 작은 곤충과 달팽이, 양서류에게 건네는 ‘물 한 잔’ 같은 존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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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재희


저는 숲에 갈 때마다 나무에 낀 이끼를 꼭 찾아봐요. 이끼가 예쁘기도 하지만, 모든 나무가 같은 모습으로 이끼를 품고 있는 건 아니라서 더 흥미로워요. 어떤 나무는 한쪽 면에만 이끼가 자라 있고, 어떤 돌은 그늘진 쪽만 초록빛을 띠고 있잖아요. 그런 모습을 보면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돼요.

‘여기는 조금 더 습한 자리구나.’

‘근처에 물길이 있었을까?’

‘비가 오면 이쪽으로 물이 흐르겠구나.’ 하고요.

물론 정확한 데이터는 아니지만, 저는 이끼를 보면서 숲의 환경을 짐작해 보는 시간이 좋아요. 그래서 제가 제주의 숲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이끼가 만들어 주는 원시림 같은 분위기, 축축한 공기, 오래 머문 물의 느낌이 참 좋거든요. 이끼가 있는 곳에는 작은 곤충과 달팽이, 양서류가 머물 수 있고, 그 생명들을 따라 또 다른 생명들도 이어져요. 습도는 단순히 공기 중의 물기가 아니라, 숲속 생명들이 머물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 같아요. 너무 마르지 않게, 너무 뜨겁지 않게, 작은 몸들이 숨을 고를 수 있도록 숲이 마련해 둔 자리처럼요.

 숲은 비를 한꺼번에 흘려보내지 않고, 잎과 가지와 이끼와 흙 사이에 잠시 머물게 해요. 그렇게 천천히 머문 물은 숲을 식히고, 생명들에게 다시 움직일 힘을 주겠지요. 너무 더운 여름이에요. 숲속의 작은 생명들이 그 촉촉한 자리들 덕분에 무사히 여름을 건너가길 바라요. 그리고 우리도 숲이 더위와 비를 받아 내는 방식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으면 좋겠어요.

 

희경: 결국 7월의 숲은 더위와 비를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는 숲 같아요. 잎은 그늘을 만들고, 가지는 빗방울의 속도를 늦추고, 이끼와 흙은 물기를 붙잡아 두죠. 그 덕분에 작은 생명들은 너무 뜨겁지 않게, 너무 마르지 않게 여름을 건너가고요. 숲이 조용히 속도를 낮추어 주는 동안, 생명들은 그 안에서 다시 움직일 힘을 얻는 것 같아요.

 

숲은 여름을 밀어내지 않는다.

뜨거운 빛은 그늘로 낮추고, 거센 비는 천천히 받아 내며, 그 사이에 생명들이 머물 자리를 만든다.

7월의 숲은 그렇게 그늘을 내고 비를 천천히 받는다. 그 느린 품 안에서 흙과 이끼와 곤충과 새들은 저마다의 여름을 보낸다. 

 어쩌면 우리 도시에도 필요한 것은 더 빠른 배수가 아니라, 나무가 주는 그늘과 흙, 그리고 물이 잠시 머물 수 있는 자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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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경 에코숲이야 대표

                      (hhh85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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